Interview
커리어 경로를 재탐색하시겠습니까?
박주희 변호사
김수미 에디터
2024.02.16
  • Editor's Note
    • 진로에 대한 고민은 직업을 갖고 난 뒤에 더 크게 찾아오기도 한다. 헌신적 노력 끝에 어렵사리 변호사가 되었는데, 그때부터 오히려 고민이 시작된다면 어떨까? 입문을 위해 쏟은 노력과 시간의 크기만큼 혼란과 방황이 클 것이다. 변호사로서 나선 길 위에서 목적지를 잃은 듯 느껴질 때,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오랜 내적 방황 끝에 자신만의 나침반을 발견하고 문화예술 변호사로서 커리어를 펼치는 박주희 변호사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그 자체로 영감과 위안이 될 것이다. 
    • 치열하게 고민하며 자기 탐색의 시간을 가진 이들은 어둠이 걷히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는다. 누군가 쥐여준 지도에 의존하는 대신, 자기 손과 발의 감촉과 감각에 의지하며 한 걸음씩 뗀다. 그 시간을 겪어낸 이들은 암중모색의 경험이 결코 헛되었다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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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일이 정말 나에게 잘 맞는 걸까?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있는 독자 
      자신만의 전문성을 찾아 업의 영역을 특화하고 싶은 독자
      변호사로서 도달할 수 있는 다양한 커리어가 궁금한 독자

 

법과 예술, 두 세계를 통역하는 변호사

Q. 문화예술 변호사로서 주로 어떤 업무들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파인 아트fine art 쪽 일만 할 거라고 많이들 생각하시는데요. 문화예술계에서 발생하는 민형사부터 기업 자문, 노무, 지식재산권까지 다양한 영역의 일을 해요. 보통 전문 변호사는 다루는 법을 기준으로 활동 분야를 나누잖아요. 상사 전문 변호사가 상법을, 형사 전문 변호사가 형법을 다루는 식으로요. 저는 필드를 기준으로 전문성을 얻었기 때문에 업무 범위의 스펙트럼이 넓어요. 문화예술 변호사는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만 조예가 깊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다뤄야 하는 법률 이슈가 많다 보니까 실질적으로는 제너럴리스트적인 법적 지식이 요구되거든요. 인사·노무나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질의가 올 때도 있고요.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기업 간의 투자 계약서를 다루거나 문화예술계에서 발생하는 민형사 사건을 맡기도 해요. 클라이언트도 예술가나 갤러리부터,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행정 기관, 사기업까지 다양하고요. 문화예술 분야에서 발생하는 법률문제는 다 다룬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 경우에는 시각 예술 쪽 일이 많은 편이에요. 갤러리들 간의 계약이나 작가들 간의 계약, 해외에서 외국 작가들이 들어올 때 전시 관련 계약 등을 검토·자문하고요. 요즘은 미술품 투자와 관련된 계약도 많고, 미술과 관련된 사업을 하려는 기업들도 많이 늘어나서 기업 자문 기회가 많아요. 연관해서 행정기관들에서도 니즈가 많아지고 있고요.

 

Q. 다루시는 분야가 넓고, 맡으시는 일의 결도 다양한데요. 업을 정의하는 변호사님만의 단어가 있을까요?

제 역할은 통역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에서 쓰는 용어와 업계의 상황을 판사나 검사에게 법률적인 언어로 전환해줄 필요가 있거든요. 반대로 판결문이나 소송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문화예술계 클라이언트에게 해석해 줘야 하고요. 예를 들면 색면추상과 관련된 저작권 침해 사건을 맡은 적이 있어요. 상대방 쪽에서 저희 의뢰인이 비슷하게 그렸다고 고소를 한 상황이었는데요. 육안으로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색면추상은 저작권 측면에서 보호받기 어렵거든요. 이런 부분을 모르는 사람은 함부로 판단할 수 있겠죠. 재판부를 설득하려면 이러한 화풍이 색면추상이고, 색면추상의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마크 로스코부터 엘즈워스 켈리까지 설명하면서 이런 풍의 작품들이 비슷하게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전달해야 해요. 그리고 의뢰인에게는 법률의 언어를 풀어서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요. 이런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서면처럼 딱딱하게 써버리면 양쪽 모두 설득할 수 없어요.

 

치열한 자괴와 고민 속에서 찾은 길

Q. 법과 문화예술 사이를 잇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저는 문화예술 변호사가 되겠다고 한 번도 계획해 본 적이 없어요. 원래 미대에 가려던 꿈이 있었는데 포기하고 법대에 갔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법조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죽을 만큼 힘든 공부도 견디는데 저는 휩쓸리듯 들어온 데다가 공부까지 어려워서 아주 힘들었어요. 허송세월하다가 졸업반은 됐는데 딱히 하고 싶은 건 없고, 나온 건 법대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부했죠.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시 합격하고 저는 우울증이 왔어요. 그런 큰 시험에 붙으면 공부한 사람 입장에서 당연히 좋긴 한데 한편으로는 망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제 발을 뺄 수 없겠다, 싶었던 거죠. 그렇게 변호사가 되고 나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Q. 커리어 초반에 고민이 정말 많으셨겠어요.

재미도 없고, 힘들고, 당시 제가 관찰할 수 있던 선배 변호사에게서도 이상적인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다들 맨날 바빠서 지쳐있고, 저보고 어려서 기회가 많으니 좋겠다며 오히려 어린 연차를 부러워했어요. 예전처럼 변호사가 되기만 하면 사회적 명성이나 부귀영화가 따라오는 환경도 아니고, 일은 험하고 힘들고, 선배들은 과로로 탈이 나는 부정적인 상황들만 이어지니까 희망이 안 보였어요.


Q. 방황의 시기에 전환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져요.

3~4년 차 때 나도 뭔가 결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변호사 일이 진짜 안 맞는지, 다른 일을 한다면 뭘 해야 할지 결론을 내야 한다고요. 원래 하고 싶었던 예술 분야 쪽 일을 염두에 두고 한 번 더 공부해 보려고 문화예술경영대학원에 갔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가니까 제가 변호사라는 이유로 문화예술계 종사자분들이 굉장한 관심을 주고, 본인들 업계와 관련한 법률적인 고민을 물어보더라고요. 갤러리에서 일하거나 패션쇼 기획사에 다니는 등 다양한 분야의 동기, 선후배와 교류할 수 있었어요. 실제 필드가 어떻게 움직이고, 문화예술계 종사자의 니즈가 무엇인지 많이 알게 됐어요. 그들에게 필요한 법률적인 지식을 설명해 주는 것에서 시작해서 서서히 문화예술 변호사가 제 본업이 된 것이에요.


Q. 문화예술 변호사라는 목표가 이미 있어서 대학원에 가신 줄 알았어요.

목표를 세우고 특별한 방법이나 계획을 거쳐서 문화예술 변호사가 됐을 거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부끄럽지만 큰 목표 없이 그때그때의 고민을 붙잡고 자연스레 흘러오다가 서서히 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경우예요. 사실 문화예술 변호사라는 타이틀도 제가 만들어낸 말이에요. 예전에는 변호사 규정에 ‘전문’이라는 말을 쓰려면 굉장히 까다로웠어요. 문화예술 쪽을 전문으로 해볼까 했는데 전문 섹터가 없더라고요. 엔터테인먼트나 저작권은 있는데, 엔터테인먼트는 매니지먼트사 분쟁 등을 다루시는 변호사님들이 있지만 저랑은 결이 다르고, 그렇다고 제가 저작권만 다루려던 건 아니었거든요. 이 일의 범위를 명확하게 표현하려니 예술이라는 용어만으로는 제가 다루는 콘텐츠, 만화, 방송 자문 등을 포괄할 수 없어서 고민 끝에 문화예술 변호사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Q. 한국 사회에서는 공부를 잘하면 고민할 여지를 안 주고 그 아이의 진로를 정해버리는 경우가 많죠. 공부를 잘한 바람에 변호사가 되고 뒤늦게 자기 길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독자가 분명히 계실 텐데요. 그런 방황을 먼저 겪으신 선배로서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요?

보통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법조인들은 2학년 때 사시 합격하고, 삼대가 법조인이고, 초임지로 중앙지방법원 판사를 갔다는 사람들이에요. 그렇지 않은 저는 계속 위축됐어요. 사람들은 사시 합격하고 변호사 됐으니까 다들 자존감이 강하리라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데에서는 더 이상 잘났다는 생각을 할 수 없어요. 사시 치르고, 연수원에 있는 동안 모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요. 서열화된 시스템 영향을 이후로도 계속 받고요. 제가 연수원에 있던 시절엔 시스템 안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이겨내는 것만 미덕으로 여겼어요. 변호사로서 하나의 스펙을 만들기 위해서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싶다고 교수님께 상담한 적이 있는데 말리셨거든요. 지금은 그때 어학연수 갔다 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요. 일례로 넷플릭스에 계신 변호사님 같은 경우도 외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분이고, 그 사이 세상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커리어에 대해 고민의 시기를 겪고 있다면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배 변호사들의 모습을 많이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남들이 짜놓은 정규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괜찮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사례를 알았더라면 덜 힘들었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제가 방황하던 시절에 했던 일들이 당시에는 쓸모없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참고가 될 만한 모델을 찾는 노력도 하되, 오늘 내가 해내고 있는 업무도 훗날 좋은 재료가 될 테니까 지금 막막하다고 크게 속상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Q. 많은 고민을 안은 채로 하루하루 해냈던 일들이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됐나요?

처음에 금융 쪽에서 인하우스 변호사로 시작했는데, 기업 자문과 관련한 지식은 그때 거의 다 배웠어요. 갑자기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저연차 변호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해야 했는데요. ‘나는 왜 이렇게 운도 없지’ ‘그나마 금융 쪽이 유망하댔는데 왜 회사는 또 이렇게 되나’ 싶었지만 그 시기에 했던 일들이 지금 업무에 도움이 많이 돼요. 이후엔 커리어를 서울지방변호사회 사무차장으로 옮겼거든요. 변호사들이 해볼 수 없는 행정 업무를 하고, 대변인을 같이 하면서 미디어 대응 방법을 그때 배웠어요. 변호사 징계 진정·심의 업무를 5년 넘게 하다 보니까 반면교사의 케이스를 많이 보면서 연수원 성적으로 판단하는 시선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죠. 당시에는 어디 가면 좀 창피했어요. 대부분 로펌 소속이거나 개업 변호사이면서 플러스알파로 단체의 임원 직책을 맡는데 저는 사무처장으로 풀타임 일했거든요. 누군가는 ‘쟤는 변호사가 왜 이런 일을 하지’ 생각했을 거예요. 그때는 무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나, 싶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과거의 경험이 다 어떻게든 도움이 돼요.


Q. 아마 어떤 주니어 변호사님은 이런 얘기를 듣고 위로받을 것 같아요.

걱정이 많다고 대비가 되는 건 아니에요. 다만, 고민이 많은 사람은 초식 동물처럼 언제 위험이 닥칠지 모르니까 모든 오감을 열어놓고 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인사이트를 좀 더 빨리 얻을 때도 있고요. 실무에서도 필요한 것들도 빨리 캐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까다로운 일에서 느끼는 큰 성취감

Q. 문화 예술 분야는 법률적인 잣대로만 접근해서는 풀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예를 들면 어떤 일이 있을까요?

전통공예는 도제식 교육이 많은 편이라 스승의 작업을 제자가 물려받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느 젊은 공예 작가가 스승과 비슷한 방식의 작품으로 대회에 출품해서 수상을 했는데, 경쟁자가 고발한 사례가 있어요. 이미 출품된 적 있는 스승의 방식으로 만든 작품이니 모집 요강에 위반된다면서요. 결과적으로 수상자가 형사 처벌을 받았는데요.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죠. BTS가 연말 시상식에서 삼고무, 오고무를 췄는데 이 춤이 개인의 창작품으로 저작권 등록되어 있어서 유족들이 문제를 제기한 일도 있고요.


Q. 법적으로만 판단하기에는 현실과의 괴리가 있겠네요. 이런 상황에서 법조인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나요?

특정 분야에서 발생하는 일 중에는 법이 아닌 분야 내부의 토론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요. 특히 문화예술은 내부에서 먼저 합의를 이뤄야 하는 영역이 많다고 생각해요. 문화예술 변호사라고 하면 어떤 예술 관련 분쟁이든 법적으로 판가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모든 것을 법의 기준으로만 보면 법에 오히려 잡아먹히기 때문에 변호사들이 물러서줘야 되는 부분이 있다고 보거든요. ‘문화예술 변호사로서 간극을 다 메꾸겠습니다’가 제 역할은 아닌 것 같아요. 외부에 있는 변호사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고 정리하는 게 문화예술계 내부 사람들에게 얼마나 납득이 될 것이며, 법과 예술의 입장이 완전히 상반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Q. 문화예술 분야는 클라이언트의 특성을 이해해서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요. 실제 그런가요?

예술가들이 다 이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계약이나 협상할 때 보통은 자신의 이익이 크면 수용하거든요. 예술가들은 이익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에 더 큰 가치를 둘 때가 있어요. 전시 계약과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데요. 어떤 예술가가 자신의 전시장에 어떤 인공광도 없어야 한다고 요구했어요. 큰 홀 안에 암막을 설치한 뒤,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면 그 안에 미디어 작품을 두는 게 본인의 구상이었어요. 하지만 전시장 안에 법적으로 비상구 유도등은 꼭 있어야 하잖아요.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수용할 사안이지만 예술가 중에는 납득을 못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 사람에게 ‘법 때문에 안 돼요’라고 하면 ‘전시 안 할게요’라고 나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설득하는 작업에 공이 들죠. 거기까지 제 역할은 아니지만 저도 회의에 와달라는 경우가 많아요. 단정적인 답변을 하기보다는 라포를 많이 형성하고, 여러 노력을 했음에도 부득이한 상황임을 잘 설명하면서 최대한 구상안에 가깝게 조율할 방안을 제시하는 식으로 어르고 달래는 과정이 필요해요.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할 때 조금 예민하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긴 하죠.


Q. 상대 특성에 따라 개별 대응하려면 지적인 노동은 물론이고 정서적 에너지도 상당히 써야 해요. 법리로만 가면 되는 정확하고 심플한 일을 선호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변호사님이 이런 까다로운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이유가 뭘까요?

제가 예술을 좋아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저는 예술가들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저는 참는 성격이고, 온갖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하고 뒷일을 걱정하며 사는 사람이라서 반대의 사람들을 봤을 때 희열을 느끼거든요. 감정에 충실하고, 때로는 당장 들어올 돈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더 중시하는 모습들이 멋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요. 그래도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동경과 애정이 있어선지 과정이 어렵더라도 풀어내고 싶다는 집념이 더 강하게 드는 것 같아요. 어려운 문제를 미션으로 받는 대신 성취감도 큰 것 같고요.

 

 

효율과 성과 바깥에서 채우는 동력

Q. 평소 중요한 전시나 공연은 놓치지 않으시고, 민화 지도자 과정 수료,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 등 좋아하는 영역을 정말 깊게 파시더라고요. 변호사가 유독 바쁜 직업 중 하나인데 이렇게까지 하시는 건 삶이나 일에 주는 긍정적 영향이 크기 때문일까요?

다들 물어봐요. 잘 시간도 없고 밥 먹을 시간도 없는데 그런 걸 하냐고요. 왜 그렇게까지 하나 생각해 보니까 시간을 낭비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저는 항상 효율과 성과를 따지며 살았어요.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공부할 방법을 찾아야 했고, 일하면서도 짧은 시간에 어떤 걸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지 항상 계산하거든요. 계약서를 만들든 서면을 쓰든 토씨 하나에도 빙산의 일각처럼 의도를 다 숨겨놓고요. 늘 그렇게 살아야 하다 보니까 아무 계산 없이 시간을 무용하게 쓸 수 있는 대상이 너무 좋은 거예요. 민화를 그려서 작품을 팔거나, 나중에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돈을 벌겠다는 계획이나 의도 없이 그냥 내 시간을 온전히 쏟을 수 있어서 행복해요. 쓸모없는 일을 하는 시간에 대한 만족감이 커요.

 

Q. 꾸준히 변호사님의 역할을 하신 뒤에 10년 뒤쯤 도달해 있을 문화예술계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본다면요?

외국 작가들의 경우 자신의 가치를 철저하게 지키거든요.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는 자신의 권리나 의무를 분명히 하면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여전히 있어요. 자기 예술과 노력의 정당한 가치를 지키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지금도 많거든요. 단기 프로젝트에서 업무 범위와 비용을 초기에 정리하지 않고 시작하는 바람에 프로젝트가 무산됐을 때 제대로 정산받지 못하기도 하고요. 사실 잘 나가는 사람들이 부조리한 상황을 바꾸긴 어려워요. 그들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챙겨주니까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고, 관에서 밑바탕을 마련해야 하고, 예술가 각자가 자신의 가치에 대해 인식해야 하는 이유예요. 그러려면 예술가들에 대한 교육이나 계도도 필요하고요. 예술가들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잘 알고 지킬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여쭐게요. 변호사님이 발견하신 이 업의 미덕이나 아름다움이 무엇일지 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변호사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면서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라이센스의 무게감 때문인 것 같아요. 법대 4년부터 연수원까지 근 10년을 공부만 했는데도 법이 어려워요. 처음에 변호사를 달고 소송할 때 너무 떨렸어요.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졌거든요. 돈을 받고 누군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줘야 되는데 아무나 링 위에 올라가서 싸울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직업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은 만큼 애정도 커요. 변호사 타이틀을 달고서 대충하면 안 된다는 무게감이 이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editor 김수미
photographer 송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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