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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 기준 중 하나인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의 의미와 범위 등
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김재협 변호사
2024.02.15

'2023년 엘박스에서 가장 많이 복사된 판례' 의 담당 변호사가 직접 판례를 해설해 드립니다.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 기준 중 하나인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의 의미와 범위 등

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손해배상(기)] 

사실관계

원고 회사는 벨(BELL)이라는 자체브랜드로 손톱깎이를 제조・판매하는 전문업체로, 1980년대에는 세계 손톱깎이 시장의 60% 정도를 차지한 적도 있으나 중국산 저가 제품의 등장 등과 손톱깎이의 원료인 철강재 가격 인상 등으로 고전을 겪게 된다.

피고는 13년 남짓 원고 회사 무역부장 등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지 2개월도 채 안 된 시점에 중개무역회사를 설립하였고, 중국 하청업체(상당수가 원고 회사의 거래업체였음)를 설득하여 원고 회사가 미국의 배셋(basset)사 등에 납품한 바 있는 손톱깎이 세트, 손톱미용 세트 등과 일부 유사한 제품을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같은 수입업체에 납품하였다.

피고가 재직 중이던 2002. 9. 체결한 경업금지약정 및 기밀유지약정이 포함된 연봉 근로계약에 따르면, 피고는 퇴직 후 일정 기간 원고와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에 취업하거나 직∙간접적 영향을 미쳐서는 아니 되고, 근무 시 체득한 경영상황, 기술정보, 거래처 단가 등 경영상 비밀이 될 수 있는 회사업무 일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아니하도록 되어 있었다.

원고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피고가 퇴직 후, 위 약정에 위반하여 원고와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를 설립하여 원고의 영업비밀인 ‘납품처 바이어 명단, 납품가격, 아웃소싱 구매가격, 물류비, 가격산정에 관한 제반자료, 원고의 중국 하청업자에 대한 자료’를 이용하고 그간 재직 중에 영업하던 원고의 여러 중국 하청업체를 부추겨 원고가 납품하던 손톱깎이 등과 거의 비슷한 제품을 원고가 거래하던 수입업체에 기존보다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납품하게 함으로써 원고의 수출 물량을 급격히 감소하게 하여 상당한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제1심, 항소심 모두 원고가 패소하고, 대법원에서도 원고 상고를 기각하였다.


주요 쟁점

수출 업무를 담당하던 근로자가 종전 회사를 퇴사한 후 경쟁 관계에 있는 중개무역회사를 설립하고 종전 무역업자, 하청업체 등 고객의 일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종전 회사가 거래처에 납품한 제품과 비슷한 제품을 그 거래처에 저가 납품함으로써 종전 회사의 수출 물량을 감소하게 한 것이 경업금지약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


사건의 경과

가. 원심판결의 요지

고용 기간에 습득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 등을 퇴사 후에 사용하여 영업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용인이 고용되지 않았더라면 그와 같은 정보를 습득할 수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위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한 정보가 동종업계 등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만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6도8278 판결 참조). 이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주장하는 ‘배셋사의 바이어 명단, 납품가격, 아웃소싱 구매가격, 물류비, 가격산정에 관한 제반자료, 원고의 중국하청업자에 대한 자료’(이하, ‘이 사건 각 정보’라고 한다)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 사건 각 정보는 이미 동종업계 전반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설령 일부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입수하는데 그다지 큰 비용과 노력을 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에 의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거나 그 보호가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에 해당한다.

또한 원고의 주요 거래처인 미국 배셋사는 종래부터 제품별로 국내외 여러 업체에 사양을 제시하고 가격과 품질 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업체로부터 납품을 받았고, 중국 무역업자 역시 독립적으로 국내 여러 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아 중국 제품을 공급하는 영업을 해왔다. 비록 원고가 이들과 거래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업체의 진입을 막고 거래를 독점할 권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그러한 거래처와의 신뢰관계는 무역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측면이 강하므로, 이 역시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에 의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거나 그 보호가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에 해당한다.


나. 대상판결의 요지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 경업금지약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은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한 판단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의 기간, 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여부,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라 함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2호에 정한 ‘영업비밀’뿐만 아니라 그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였더라도 당해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써 근로자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이거나 고객 관계나 영업상의 신용의 유지도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사건 각 정보는 이미 동종업계 전반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설령 일부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입수하는데 그다지 많은 비용과 노력을 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에 의해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거나 그 보호가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우에 해당한다. 게다가 

① 피고가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의 체결에 따른 특별한 대가를 수령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데도 퇴직 후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경업이 금지되어 있는 점 

② 피고는 1986. 1. 5. 원고에 입사하여 1999. 9. 6.부터 2004. 2. 28.까지 원고의 무역부장으로 근무하였는데, 무역 업무를 통하여 습득한 일반적인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없다면 직장을 옮기는 것이 용이하지 않고, 원고 회사를 그만둘 경우 생계에 상당한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점 

③ 원고가 퇴직하고 같은 업종의 회사를 설립하여 원고가 거래하던 거래처에 납품할 수 있었던 것이 오로지 피고가 거래처 바이어 등과 신뢰관계를 이용한 것이라기보다는 해외 구매업체들이 중국 쪽으로 구매처를 옮기는 추세에서 주로 국내 하청업체들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오던 원고 회사와는 달리 피고가 전적으로 중국의 하청업체들로부터 공급받은 제품을 납품함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④ 비록 피고가 회사를 설립하여 동종 사업을 영위하고자 원고 회사를 그만두었고, 퇴직일에 임박하여 미리 그 사업을 준비하는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배신성이 크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하여 이를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 경업금지약정은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써 무효이다.  

판례 해설

가. 대상판결에 대한 기본적 평가 의견

대상판결은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에 관해서 종래의 하급심 판결이 설시하여 왔던 판단 기준을 정리하여 제시하고 유효성 판단의 요소 중의 하나인 사용자의 보호가치 있는 이익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판단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선례로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즉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 판단 기준에 관하여, 근로 관계의 종료 후의 경업을 금지하는 약정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근로권 등을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자유로운 경쟁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정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로서 무효라는 판단은 이미 다수의 하급심 판결에서도 인정되어 왔다. 대상판결은 이에 한걸음 더 나아가 경업금지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자의 보호가치 있는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경업 제한의 기간, 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여부,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다소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나. 위 판단 기준 충족 요건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관하여

대상판결은 위 판단 기준 충족 여부 요소에 관하여 다양한 사실과 관점 등을 제시하고, 사용자의 보호가치 있는 이익으로 영업비밀 외에도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 또는 정보로써 근로자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 고객 관계, 영업상의 신용 유지 등도 포함하는 등 상당히 확대하고 있으나, 핵심은 경업금지약정에 의한 사용자의 보호가치 있는 이익과 경업금지에 의해서 초래될 근로자의 불이익을 형량하는데 있다.

한편, 근로자의 불이익은 경업 제한의 기간, 지역 및 대상 직종에 따라 다르고, 근로자에게 준 일정한 대가의 존재는 근로자의 불이익을 완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이전 판결은 대가의 존재라는 요소를 이익형량에서 고려해야 할 하나의 요소라고 볼 뿐 불가결의 요소 즉 요건으로 보지는 않았다). 대상판결은 그 외에도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도 판단 요소로 보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관하여는 명시적인 판단이 없다. 아마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가 높을수록 사용자의 보호가치가 있는 이익과의 관련성이 높아 사용자의 이익에 보다 무게가 실리게 될 것이다. 특히 공공의 이익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것은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추상적인 것이어서 아쉬움이 있다.

다른 한편 근로자의 퇴직 경위에 관하여는 근로자가 경업을 영위하기 위하여 근로 관계 종료 전부터 상당한 시간을 두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사용자의 거래처, 하청업체 등 고객을 빼앗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면 ‘배신성이 크다’고 볼 수 있는 등으로 이익형량에서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비교형량 결과 사용자의 정당한 이익에 비하여 근로자의 불이익이 더 크면 당해 경업금지계약 무효, 경업금지의 범위 축소 등으로 판단될 것이다.

요컨대, 대상판결이 위와 같은 판단 기준을 밝히기는 하였으나, 그 자체만으로는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없는 등 예측가능성이 상당히 낮다는 한계가 있다.


담당 변호사의 직강 포인트

소송에서 지는 쪽 당사자를 대리한 변호사가 아쉬운 점은 재판부의 사실관계에 대한 인정이 실체와 다른 점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증거에 대한 신빙성 판단이 재판부 전권이어서 재판부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개인과 회사가 손해배상 등으로 다툴 때 재판부가 대체로 회사는 강자이고, 개인은 약자라는 입장을 가지고 개인에게 매우 우호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므로 저울추가 개인에게 기우는 것이 아쉬웠다.  

그 외에도 원고 회사의 대리인 입장에서, 원고 회사가 피고에게 경업금지약정계약서에는 없으나 혼자서 오랫동안 해외거래처 담당을 하도록 신뢰를 주고 상당한 인센티브를 지속해서 부여한 점, 피고가 퇴사 전 몇 년 전부터 외국 거래처에 자신이 독립하여 중개무역회사를  설립할 것이니 원고 회사 대신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부탁한 점, 원고 회사의 외국 수출 매출이 급격히 준 것이 다른 경제 사정이 아니라 피고의 배신에 의한 것이 거의 100% 맞다는 점, 미국 배셋회사나 중국 하청업체 등이 사실상 원고와 전속적 거래처였는데 피고가 이를 탈취한 것이라는 점 등에 대한 믿을 만한 증거를 확보하여 제출해 달라고 하였음에도, 이러한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여 보다 정치하게 준비된 확실한 자료 제출을 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경업금지약정과 관련하여 소송상 빈번히 문제 되는 것은 대상판결이 밝힌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중 영업비밀을 제외한 다른 요소에 관한 것인데, 이익형량이 가장 중요하다. 기업이나 근로자가 그 요소에 대한 구체적 입증은 물론 손실 수액 등에 대하여도 객관적 증거로 뒷받침되는 계량화, 수치화로 재판부로부터 이익형량 시 유리한 판단을 받는 방향으로 철저하게 소송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illustrator 이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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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협 변호사
사법연수원 15기로 23년 남짓 판사로 근무하였고 재판연구관(행정조 조장), 부장판사 등으로도 상당 기간 근무하였다. 민사, 형사는 물론 행정 사건에 관한 법리에도 밝다. 현재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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